1급 발달장애 유용연씨는 어떻게 타악기 전문 연주자로 변신했나

김혜진

십수년 차 다큐멘터리 작가. 여행서 『인조이 스리랑카』의 저자이며,

현재 그림을 배우며 인생을 자유로이 유영중이다.

 

 누나와 아홉 살 터울로 태어난 늦둥이였다. 용연이는 말과 걸음이 늦됐다. 특히 작은 소음에도 귀를 막고, 소리가 울리는 지하나 사람 많은 곳에 가면 자지러지게 놀라 울음을 터트렸다. 알고 보니 단순히 늦되고, 예민한게 아니었다. 용연이는 네 살 때, 발달장애 1급을 진단받았다. “이 아이가 과연 세상에 나가서 살 수 있을까?” 엄마는 어딘가로 날아가 버리려는 희망 을 부여잡았다. 신발 뒤축이 닳도록 시끌벅적한 공간을 찾아다니고, 피아노와 드럼 등의 다양한 악기를 가르쳤다. 소음에 무뎌지게 하고, 근육을 발달시키기 위해서였다.

 이십여 년이 지난 지금, 용연이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 이미 성인이 되었을 나이, 여느 성인 발달장애인처럼 복지관이나 주간보호센터에 다니고 있을까. 그의 어머니에게 아들의 안부를 물었다.

“우리 용연이요? 관객을 울리고 웃기는 타악기 연주자로, 어엿한 사회인이 되었어요.”

2006년에 창단된 국내 최초의 발달장애인 오케스트라 '하트하트오케스트라'
2006년에 창단된 국내 최초의 발달장애인 오케스트라 '하트하트오케스트라'

 

 올해 스물다섯 살이 된 용연 씨는 ‘제2의 지휘자’라고 불리는 타악기 연주자가 되어 있었다. 오케스트라의 중앙에서 팀파니 채를 양손에 들고 춤추듯 연주하는 걸로 유명하다고 했다. 용연 씨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면, 지금의 일상은 꿈과 같은 일이었다. 용연 씨의 어머니는 꿈이 현실이 된 건 하트 하트오케스트라 덕분이었다고 말했다. 

 

 가장 소외된 장애를 선택한 ‘하트-하트재단’
 “발달장애인 오케스트라, 그게 가능하다고 생각해?”

 

 하트하트오케스트라는 2006년 ‘하트-하트재단’1)에서 창단한 국내 최초 의 발달장애인 오케스트라다. 당시 한국 사회는 장애인이라고 하면, 거동이 불편한 지체장애인만을 떠올리던 시절이었다. 발달장애2)는 평생 타인의 돌봄과 보호를 받아야 하는 중증 장애지만, 장애가 겉으로 드러나지 않아 소외되고 있었다. 가장 소외된 장애, 그곳이야말로 복지재단이 손을 뻗어야 할 곳이었다.


1) 1988년에 설립. 발달장애인이 장애로 인한 차별 없이 사회에 더불어 살아갈 수 있도록 다양하고도 전문적인 사회복지 프로그램을 운영해왔다.
2) 자폐, 지적장애 등 또래와 비슷한 신체 발달을 보이지만 지적 능력이 낮고 타인과의 상호작용에 어려움이 있는 사회성 장애를 말한다. 보건복지부 통계에 의하면 우리나라의 발달장애인은 약 26만 명으로 추산된다.


 재단은 음악에 관심 있는 발달장애 초·중생 여덟 명을 모아, 오케스트라를 만들기로 했다. 그러나 오케스트라 창단 소식을 들은 사람들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게 가능하겠냐는 표현이었다. 하트-하트재단의 설립자 신인숙 이사장은 조금은 막막했던 당시를 회상한다.

 “많은 이들이 ‘산만하고, 눈맞춤도 안 될 정도로 사회성이 부족한 발달장애인들이 어떻게 오케스트라를 하겠느냐’고들 말했죠. 하지만 희망을 버릴 수 없었어요.”

 하트하트오케스트라는 실험이고 도전이었다. 하나의 작은 사회라고 할 수 있는 오케스트라에 발달장애 아이들을 적응시키는 과정은 험난했다. 집중력이 낮다 보니 연습을 시작하기만 하면, 화장실에 가고 싶다는 아이, 배고프다는 아이들이 우후죽순으로 솟아났다. 악보를 못 보는 단원도 많아, 비장애인이 열 번 연습하면 익힐 수 있는 곡을 천 번 가까이 연습해야 했다. ‘다른 친구들의 악기 소리를 잘 들어야 하고, 자기 연주 순서가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라는 말도 입이 마르도록 해야 했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아닐까, 의구심을 품을 여유도 없이 그렇게 정신없이 몇 년이 흘렀다.

하트하트오케스트라 단원의 악보. 초창기엔 클래식 한 곡을 익히기 위해 천 번 가까이 연습해야 했다
하트하트오케스트라 단원의 악보. 초창기엔 클래식 한 곡을 익히기 위해 천 번 가까이 연습해야 했다

 

 가슴을 울리는 오케스트라로 성장
 '발달장애인도 할 수 있다'는 인식을 심다

 

 시간은 걸렸지만, 그 시간은 헛되지 않았다. 단원들은 오케스트라 안에서 동료, 여러 지도자와 함께 연주하면서 조금씩 변화해 갔다. 연습과 공연시 지켜야 할 규칙을 알게 되었고, 다른 단원의 연주에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오케스트라 단원의 어머니들이 입을 모아 하는 말이 있다.

 “오케스트라로 인한 가장 큰 변화는 사회성이에요. 자기만의 세계에 갇혀, 늘 혼자였던 아이들이 오케스트라 안에서 인내를 배우고, ‘함께한다는 것’의 의미를 알게 되었어요.”

 어느 시점에 이르자 단원들의 기량은 가파르게 향상되었고, 하트하트오케스트라도 그만큼 성장했다. 기업이나 단체, 국제 행사에 초청되는 횟수가 늘었고, 연주가 끝나면 관객들은 우렁찬 환호성과 함께 기립박수를 보냈다. 매 공연은 발달장애인도 비장애인과 마찬가지로 각자의 재능이 있고, 그 재능으로 박수받을 수 있음을 입증하는 순간이었다. 관객들은 하트하트오케스트라의 연주를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들었다고, 이들에겐 가슴을 울리는 힘이 있다고들 말한다. 가슴으로 연주하고 가슴으로 듣는 음악, 마음과 마음을 잇는 음악. 바로 그것이 사람들이 발달장애인을 바라보는 인식을 긍정적으로 변화시키고 있었다.

하트하트오케스트라와 협연한 비장애 전문연주자들은 자신의 그간 삶을 돌아보기도 한다.

“1,000명이 넘는 관객 앞에서 어쩜 저렇게들 자유롭고 즐겁게 연주할 수 있는지…. 스스로 그간 너무 기계적으로 연주해온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하트하트오케스트라는 국내는 물론 뉴욕 카네기홀, 존 F. 케네디 센터 등 세계에서 최고로 손꼽히는 공연장에 올랐고, 일본, 캐나다, 중국 등 해외에서의 연주도 꾸준히 이어갔다. 2006년 창단 이후 국내외에서 선보인 공연이 무려 1,000여 회에 달한다.

하트하트오케스트라는 2018년 전 세계 음악인의 꿈의 무대인 미국 뉴욕 카네기홀 공연장에 올랐다
하트하트오케스트라는 2018년 전 세계 음악인의 꿈의 무대인 미국 뉴욕 카네기홀 공연장에 올랐다

 

 안정적인 일자리 마련에의 노력
 "이제 음악인으로 살 수 있어요!"

 

 초·중생이었던 단원들이 어느덧 성인이 되었다. 어느 날부턴가, 단원들이 하나, 둘 오케스트라를 떠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성인으로서 자립하 기 위해 단순 임가공일을 시작한다는 것이었다. 오랜 시간 전문 음악교육을 받아 연주실력이 탁월한데, 복지관이나 직업재활시설에서 포장이나 조 립 같은 단순반복적인 일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단원들이 안타까웠다. ‘어떻게 하면 단원들이 음악적인 재능을 살리면서 자립할 수 있을까?’ 재단의 고민은 깊어갔다.

타악기 단원 유용연 씨
타악기 단원 유용연 씨

 2012년, 하트-하트재단은 발달장애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임시로 할 수 있는 일을 마련했다. 단원들이 직접 학교나 관공서, 기업 등에 찾아가 음악을 연주하고 발달장애에 대해 알리는, 일명 장애인식개선 강사가 그것이었다. 그리고 몇 년 뒤에는 발달장애 ‘문화예술 직무’라고 하여, 발달장애인이 온전히 전문연주자로서 살아갈 수 있는 일자리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여러 기업체를 꾸준히 찾아다니면서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일자리라는 걸 알린 결과였다.

더블베이스 단원 홍정한 씨
더블베이스 단원 홍정한 씨

 

 “초등학교 6학년 때, 하트하트오케스트라에 입단하면서부터 더 넓은 세계로 통하는 문이 하나씩 열렸어요. 오케스트라에서 전문 음악교육을 받을 수 있었고, 그로 인해 대학에서도 음악을 전공하게 되었어요. 그동안 사회성이 길러졌는지, 대학생이 돼서는 혼자서 외출하는 등 독립적인 생활이 가능해졌고, 이제는 전문연주자라는 직업까지 생겼어요.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요.”

2021년 장애인의 날에 발매한 디지털 싱글 앨범 '다시 부는 바람'
2021년 장애인의 날에 발매한 디지털 싱글 앨범 '다시 부는 바람'

타악기 단원 유용연(25) 씨 어머니의 말은 하트하트오케스트라의 힘을 가늠케 한다. 현재 하트하트오케스트라의 단원 서른다섯 명은 모두 기업체에 소속된 전문연주자로서 일정한 월급을 받는 건강한 사회인으로 자립한 상태다.

 

 코로나19로 멈춘 세상
 사람들에게 위로와 희망을 전하다

 

 2019년 말 출현한 새로운 변종 코로나바이러스로 세상이 멈췄다. 연간 100회에 달하던 오케스트라 공연은 모두 취소되었고, 이듬해 영국에서의 공연도 무산되었다. 일상의 대부분을 차지했던 공연을 할 수 없게 되자, 발달장애 단원들의 답답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더블베이스 단원 홍정한(33) 씨는 극심한 스트레스로 얼굴이 온통 화농성 여드름으로 뒤덮였다.

코로나19로 모두가 어려운 시기, 하트하트오케스트라는 비대면 음악 연주로 사람들에게 위로와 희망을 전할 방법을 모색했다. 그리하여 2020년 초부터 약 1년간, 하트하트오케스트라 단원을 비롯한 국내외 저명한 연주 자들이 한 명씩 연주를 이어가는 ‘코로나19 극복을 위한 릴레이 연주’ 영상 콘텐츠를 제작하는가 하면, 2021년에는 발달장애인 음악 단체로는 처음 으로 디지털 싱글 앨범 ‘다시 부는 바람’을 발매했다. 다행스럽게도 그해 가을부터 점차 공연이 재개되었다.

 “코로나 이후, 처음으로 관객이 꽉 찬 공연이었어요. 무대에 오른 정한이가 연주 내내 너무 환하게 웃는 거예요. 방실방실 너무도 행복하게요. 왜 웃었을까, 궁금해서 다음날 물었죠. ‘정한아, 어제 왜 그렇게 웃었어?’ 그랬더 니 정한이가 이래요. ‘관객이 많아서요!’”

 홍정한 씨의 환한 웃음은 그리움과 기쁨의 표현이었다. 발달장애를 가진 단원들이 말로 표현친 않지만, 그들에게 관객의 박수와 환호는 가장 큰 힘이고 에너지인 것이다. 코로나 시기, 공연에의 열망이 갈 곳을 잃어 피부로 분출된 것이었을까. 공연을 재개한 지금, 홍정한 씨의 피부는 눈에 띄게 매끈해졌다.

 '힘내라 대한민국! Play 하트’3)


3) 고(故) 이건희 삼성 회장이 창업주인 호암 이병철 선대 회장의 ‘인재 제일 및 사회공헌 정신’을 기리기 위해 1990 년에 제정한 상으로, 노벨상처럼 과학, 공학, 의학, 예술, 사회봉사 등 사회 각 분야에서 뛰어난 업적을 이뤄 인류 의 복지증진에 크게 기여한 사람들에게 주어진다.


 

 16년의 공로를 인정한 '삼성호암상'
 "수혜의 대상이 아닌 나눔의 주체가 될 것!"

 

 “시립교향악단 상임 지휘자들 사이에서 꼭 한 번 거쳐야 하는 코스로 소문났어요.”

 한 시립교향악단 상임 지휘자의 농담 섞인 말이었지만, 이는 시립교향악단 상임 지휘자라면 발달장애인으로 구성된 하트하트오케스트라의 지휘를 한 번은 맡아야 한다는 의미다.

 하트하트오케스트라는 국내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최정상급 지휘자와 솔리스트와 함께하는 ‘마스터즈 시리즈’ 공연을 2021년부터 이어오고 있다. 연 4회, 공연의 특성상 매회 지휘자와 솔리스트가 바뀌고, 그에 따라 공연의 레퍼토리도 계속 달라진다. 하트하트오케스트라 단원들은 더 이상 낯선 연주자와의 협연을 어려워하지 않고, 새로운 클래식 곡을 익히는 데도 몇 주가 채 걸리지 않는다. 요즘은 여느 음악가들이 그러하듯, 연주의 질을 높이기 위한 노력을 할 뿐이다.

2022년 하트하트재단은 '한국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삼성호암상 사회봉사상을 수상했다
2022년 하트하트재단은 '한국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삼성호암상 사회봉사상을 수상했다

 

2022년은 뜻깊은 해였다. 하트-하트재단은 1988년 설립 후 줄곧 장애인 을 위한 다양한 복지사업에 힘써온 공로로 한국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삼성호암상 사회봉사상을 수상했다. 발달장애인으로 구성된 하트하트오케스트라가 선도적인 문화복지의 본보기로서 우리 사회에 미친 긍정적인 영향이 수상의 주된 이유였다. 하트하트오케스트라의 김혜림 팀장에게 앞으로의 계획을 물었다.

 “하트하트오케스트라는 이제 도움을 받는 대상이 아닌 도움을 주는 대상이 되려고 합니다. ‘찾아가는 후원음악회’를 열어, 거기서 모인 기금으로 우 리 사회의 소외된 장애인들을 찾아 도울 예정이에요.”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걸었다. 그 길을 또박또박 걷는 사이, 16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혼자가 아니었다. 서로 손을 잡으니, 아름다운 선율이 만들어졌다. 그것이 오랜 세월을 멈추지 않고 걸을 수 있게 했다. 길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저 멀리, ‘아직도 가야 할 길’이 하트하트오케스트라를 향해 부드러이 손짓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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